독일 국가사회주의(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펼친 ‘백장미단’의 마지막 생존자인 트라우테 라프렌츠가 2023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백장미단 사건”은 무엇이었나? 1943년 2월 독일의 인민 법원은 이른바 백장미 사건의 피고들에게 판결을 내렸다. 이 사법 서커스의 주인공이던 담당 판사는 악명높은 나치의 앞잡이였던 롤란트 프라이슬러 (Roland Freisler)로 그는 피고인들에게 반역죄를 씌워 피고인 대부분에게 목을 베어 죽이는 참형을 선고했다.
이 때 주범으로 몰린 한스 숄은 24세, 그리고 소피 숄은 불과 21살이었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등을 인용해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 등 나치의 범죄 행각을 고발하는 전단을 만들었다. 비록 그들의 죄는 집권 나치당의 독재와 전쟁 범죄를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한 것 뿐이지만, 권력에 충성하던 판사 롤란트 프라이슬러는 무시무시한 반역죄를 적용해 이들 젊은이들을 모두 처형한 것이다. (Hans Scholl: Fighting for freedom until death) 이 것은 당시 법률에 의해서도 명백히 지나친 처벌이었지만, 그 때는 서슬이 시퍼렇던 나치 치하였으므로 독일의 법학계 인사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불의에 침묵한 독일 법학자들도 문제였지만, 특히 앞장서서 서슴치 않고 백정 짓을 한 프라이슬러가 가장 문제였다. 그 당시 프라이슬러는 나름 독일에서 명망높은 법학자였지만, 이미 양심을 팔아 권력의 앞잡이가 된 자에게 거리낄 양심이란 없었다. 그는 나치 정권에 반대한 사람들을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협박하는 가하면,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 대부분을 극형에 처했다. 백장미 사건의 피고인 중 한 명인 라프렌츠는 다행히 1년 복역 후 석방됐지만, 곧 다시 체포되는 등 1945년 4월 독일이 패전할 때까지 여러 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서구 법 철학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나치의 인민 재판은 사법 권력이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원래 법의 기본 정신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 이지만 이 판결에서는 “하늘 따위는 무시하고 권력에 빌붙어라”로 바뀐 모양이었다. 위대한 인류의 스승 칸트와 헤겔을 배출하고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낳은 독일, 유럽에서 가장 이성적인 민족이자 현대 법학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학자들과 법이론을 배출해온 독일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 법원은 제대로 판결하고 있는 것일까?